2013년 10월 29일 화요일

맥주의 역사 중세시대의 맥주

맥주 관련 블로그라 쓰고, 세계사 관련 블로그라고 읽다...

맥주의 유래나 역사를 파고들다보니, 자의반 타의반 세계사를 한번 훑게 되네요. ^^ 사실, 이것 또한 맥주를 즐기면서 너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맥주가 그만큼 인류의 역사, 그리고 유럽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도 하지만, 독일 맥주의 라벨에서 보는 성자들의 모습이나 이름 또한 이런 전반적인 세계사에서 왔거든요. 



이 맥주 아시죠? 독일의 대표적인 밀맥주 (헤퍼바이젠) 중 하나인 파울라이너. 자세히 보신 분을 알겠지만, 이곳도 수도원에서 시작된 맥주입니다. 아... 이 파울라이너 헤퍼바이젠을 살짝 차게해서 전용잔에 마시면 여름에 갈증은 한방에 해결입니다!!! 캬~

지난 포스팅에서 로마시대의 맥주에 대해서 다뤄봤는데요. 맥주를 천시했던 로마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맥주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자 진짜 흥미진진한 맥주의 뒷이야기, 출발합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에는 영토가 이렇게 넓게됩니다. 지중해를 자신들의 호수로 만들어버렸죠~


전에 보여드렸던 사진인데, 다시 소환했습니다~ 현재 영국인 '브리타니아' 지역부터 동방의 터키지역까지 정말 넓디 넓은 지역을 지배했죠. 이 넒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엄청난 '도로'를 건설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로마의 선물이 두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뭔지 아세요? 

바로 '와인' 과 '도로' 입니다. 맥주와 로마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전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로마에서 기독교를 인정하고 발전시킨 황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ㅋㅋㅋ

세계사 시간에 언젠가...한번은... 들어보셨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입니다. 
30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한 뒤, 그는 절대적 통치로 로마의 위세를 만방에 떨쳤습니다. 제국이 너무 넓었기에, 로마는 서방과 동방으로 나뉘어서 지배하게 되었는데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방인 브리타니아(영국), 게르마니아(독일), 갈리아(프랑스) 등 서방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고 해요. 동방은 리키니우스라는 또다른 황제가 선출되어 다스리게 되었죠. 


콘스탄티누스 황제


313년, 드디어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이 공포됩니다. 서방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는 밀라노에서 만나 '기독교'를 인정하고 박해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공포합니다. 그 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많은 수도원을 짓고, 로마제국 전역에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기독교 보급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하나는 야만족들에게 기독교를 보급하여 자신이 신의 휘하에 있는 황제임을 알려서 통치를 안정시키려고 했다네요.

324년,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동로마의 리키니우스는 로마제국의 '절대지존' 자리를 놓고 일대 전투를 벌입니다. 사업에서 동업이 힘들고, 하나의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공존할 수 없듯이.. 동맹관계였던 이 둘도 결국 혈투를 벌이게 되지요. 

결론은요? 뭐, 콘스탄티누스가 이겼죠. 그러니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나오는 거 아니겠음? '리키니우스'라고 들어본 적 있음? 

콘스탄티누스의 영향으로 인해, 로마제국에 전역에 기독교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도를 동로마지역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로 바꿉니다. 이후, 로마의 중심은 '콘스탄티노플'이 되죠.

콘스탄티노플이 보이시나요?

콘스탄티노플은... 지금의 터키에 있네요.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7년에 죽고, 이후 동서로마를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테오도시우스 (379년~395년)가 죽자, 로마제국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완전 분리되고 맙니다. 각 지역을 다스리는 황제는 두명이었지만 기독교 우두머리인 교황과 왕권도 분리가 되어 있었기에 교황은 계속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이라 불리던 동로마는 이후 1000년을 이어가고, 서로마는 간신히 유지되다가 476년 게르만족의 장군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이 후, 서로마는 게르만족들이 장악하게 되고, 게르만 족의 일부분인 '앵글로 색슨'은 브리타니아, 즉 영국으로, 나머지 게르만족들은 크고작은 왕족들을 세우게 됩니다.


비잔티움(동로마)와 서로마 제국, 그리고 게르만족의 이동

자, 이제 맥주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로마인들은 맥주를 천시했지만, 게르만 족은 어땠죠? 넹넹~~~

게르만족은 beer heavy drunker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맥주를 얼마나 마셔댔는지, 맥주 없으면 큰일나는 민족이었어요. 일어나서 사냥갔다가 맥주먹고, 돌아와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또 맥주먹고...취해서 넘어지고...

그런 게르만족들이 서유럽의 곳곳을 '진격'했다는 거 아닙니까. 위에 지도에서도 보이시죠? 그런데, 그당시 맥주는 가정에서 만들어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우리나라 김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집집마다 만들어 마시고, 남으면 친구들 불러다가 마시고 그랬습니다. 왜냐구요? 

맥주는 발효식품이었고, 당시에는 저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빨리 마시지 않으면 다 상해버렸으니까요. 이 당시 맥주는 모두 에일(Ale)맥주였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단기간 고온에서 발효해서 마시는 맥주지요. 막걸리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만들면 빨리 마셔야 했습니다. 

당연히 품질이나 맛, 이런 것들이 표준화되지도 않았고, 제조기술도 제각각이었죠.
이랬던 맥주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찾아옵니다.

이즈음에서 '카를로스' 대제를 언급할 시기가 온 거 같아요. 

다시 세계사로 돌아가보죠. 동로마는 정통 '로마제국'으로 지속된 반면, 서로마는 멸망 후, 수많은 나라들이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은 '로마' 있구요. 서로마 황제가 없으니, 교황은 동로마 황제의 밥이었죠. ^^;; 

481년, 현재 서유럽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국가가 나타납니다. 이름하여 '프랑크' 왕국. 
410년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완전히 퇴각한 이후, 영국은 '앵글로 색슨'족에 의해 독자적으로 걸어간 반면, 게르마니아(독일)와 갈리아(프랑스)에는 많은 국가들이 나타나는데, 이 중 하나가 '프랑크' 왕국입니다.

 '메로빙거' (이름도 이상해..)왕조에 의해 라인강 유역에 세워진 프랑크는 갈리아(프랑스)지역을 정복하면서 그 세를 넓혀갑니다. 그러나 메로빙거 왕조는 그 후 힘을 못쓰고 겔겔거리다, 751년 귀족 중 하나인 '피핀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왕권을 찬탈하고 새로운 왕조에 오르죠. 그리고 '카롤링거' 왕조를 세웁니다. 나라 이름은 그대로 '프랑크'에요. 우두머리만 달라졌지.

그런데, 그렇잖아요.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내가 왕이다' 하면 누가 인정해주나요? 이 당시에는 왕권이 강하지 않았고, 각 지역 군주와 교회에 더 힘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때!!  당시 이태리 북부의 '롬바르드족''의 공격을 받고 무서워하던 교황이 힘이 있었던 프랑크 왕국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공식적인 왕의 '직함'이 필요했던 피핀3세는 교황을 도와 도와주고 '왕'을 인정받습니다. 

그럼 카를로스 대제는 누구인가? 바로 프랑크 왕국에 카를링거 왕조를 세운 '피핀3세'의 아들입니다. 768년, 왕권을 이어받는 카를로스 대제는 영토확장을 통해 과거 서로마제국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됩니다. 카를로스 대제, 혹은 샤를마뉴 대제라고도 불립니다. 서유럽 사람들은 카를로스 대제는 현재 서유럽의 기틀을 세운 '유럽의 아버지'라고 여기죠. 왜냐...

그는 기독교를 전파시키고 주변 제국들을 자기 앞에 차례차례 무릎을 꿇게 하여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시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로마의 교황에 의해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교황은 '동로마제국'의 성상숭배문제(마리아 동상에 기도하는, 뭐 그런거)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동로마에서는 이 '성상숭배'를 금지해야 된다고 했죠. 반면 교황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으로 '성상숭배'가 필요했기에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결국... 동로마(비잔티움) 황제는 '성상숭배'를 금지시킵니다. 이에 교황(레오3세)은 위협을 느껴 자신을 지켜줄 빽이 필요했죠.  또 그동안 자신을 밥으로 취급했던 동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카롤루스 대제에게 정치적 거래를 제안 합니다.

"카롤루스야, 내가..너 서로마제국 황제라고 공식 인정할테니까... 나 좀 지켜줘...존나 무서워...사랑해5"


카를루스 황제의 로마에서 제관 수여장면 (800 12월 25일)

카롤루스 대제 또한 자신의 지배력에 대한 정통성을 확보하고 싶어, 그 제안을 수락하죠. 그래서 프랑크의 카롤루스 왕은 서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잇는 '황제'가 됩니다. (물론 동로마 제국에서는 인정하지 않았죠. 황제 존재는 인정했지만, 과거 로마제국의 정통성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카롤루스 황제... 서유럽 대륙의 일인자!!! 


카를로스 (샤를마뉴) 대제


왜 그가 맥주와 관련있는가???!!  왜냐하면 서유럽의 일인자인 그가 굉장한 맥주러버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맥주 양조를 장려하고 기술을 보급하며 품질 또한 체크했다는 거죠. 

카롤로스 황제 (사를마뉴 황제)에 의해 저급한 술로 천시받던 맥주가 게르만의 자랑스러운 술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대제는 수도 아헨(Aachen)을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벌인다. 교육 설비를 갖춘 교회를 세우고, 각지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 일의 목적 중 하나는 기독교의 포교 활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도원 기반의 정치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출처 : 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카피 미쓰루, 이현정 옮김)

카를루스 황제는 자신의 신하를 수도원장으로 파견하고 그에게 세속적인 위치인 '영주'의 자리를 보장했습니다. 그는 각 지역에 교회, 방앗간, 빵집, 마굿간 그리고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맥주 양조를 지원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거점인 수도원을 정기적으로 순회하였는데, 이 때 세금을 돈이 아닌 그 지역 과일이나 맥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황제가 한번 방문하면 어땠겠어요? 난리가 났죠. 음식하랴, 맥주 만들랴, 간식 준비하랴...ㅋ

그는 수도원을 방문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맥주 양조하는 감독관이 맥주 샘플을 가져올 때, 항상 그 맥주를 만든 사람을 대동하라. 그래야만 그가 좋은 맥주를 만들 것이다"
"감독관들은 맥주를 만드는 사람의 손을 점검하고 항상 깨끗하게 해야하느니라"
"맥주 리스트를 준비하라. 그러면 그 시기에 어떤 맥주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출처: http://www.germanbeerinstitute.com/history.html)

당연히 수도원의 양조 시설이나 실력을 엄청 발전할 수 밖에 없었지요. 카를로스 황제는 789년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설립하라고 지시합니다. 교육, 정치 그리고 맥주... 수도원은 그 모든 것의 중심이 됩니다.

칼를루스 황제가 죽고 난 후, 세 아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은 세 나라로 갈라지게 됩니다. 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

서프랑크가 프랑스가 되고, 동프랑크가 독일이 되죠. 중프랑크는 이태리 지역이구요.


카를루스 황제가 '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까닭을 아시겠지요? 프랑스와 독일은 사실 한 나라에서 나뉘어졌어요. 이후, 동프랑크는 오토1세가 또 다시 공식적으로 교황에게 황제 지위를 부여받아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우지요. 

그럼, 맥주의 본고장 중 하나인 '영국'은 어떠했을까요?

영국은 410년 로마가 완전히 퇴각한 뒤, 5세기경, 게르만 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에게 장악당합니다. 여러 국가가 세워지고 내전이 일어나죠. 그리고 9세기경, 웨식스 지역의 알프레드 왕에 의해 통일됩니다.

영국 또한 맥주(Ale,에일)은 집에서 담가먹는 음료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도 수도원에 의해 맥주가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597년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세는 브리튼(영국)에 관심을 가졌고, 성 안드레아 수사들을 이곳에 파견하였습니다. 이들 40명은 켄터베리에 수도원을 세우고 기독교를 전파하게 되죠. 


교황 그레고리 1세

로마의 수도사들은 맥주를 좋아할까요? 와인을 좋아할까요? 
당연히 와인을 좋아했겠죠. 그러나 영국은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고, 있는 것이라곤 게르만 족의 일파인 앵글로 색슨족이 마시는 품질 나쁜 맥주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수도사들은 자신의 수도원에서 와인대신 곡주를 마시게 되고, 맥주를 양조하게 됩니다. 
이것이 수도원에서 양조되는 맥주의 시초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카를루스 황제보다 앞서 제조하기 시작했죠?)





이후 유럽에 기독교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유럽 전역에 수도원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수도원에 방문자가 늘기 시작하고 수도원은 방문자를 위한 맥주를 양조하게 되죠. 영국에서는 당시 맥주를 '에일'이라고 불렀고, '에일'이라하면 전통적인 맥주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시 맥주(에일)은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음료였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거렁뱅이에게 까지도 나누어주는 것이 관습이자 미덕이었습니다.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수록 수도사들은 양조량을 늘려갔고, 노하우도 쌓이게 되었죠. 특히, 절제된 수도사들의 생활과 노동을 중시하는 기도교적 정신으로 맥주 품질은 향상 되고, 노하우도 쌓이게 됩니다.

기독교를 인정하고 전파한 로마인들!!! 이들 덕에 맥주 품질과 문화에 일대 혁신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와인의 대체품에 대한 수도사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슈퍼맨

또하나 로마인들의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도로'!!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도로는 로마인들의 통치를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습니다. 로마는 그 원대한 제국을 잘 닦인 '도로'를 통해 지배했죠. 카를루스 황제도 이 도로를 따라 왕국을 다스리지 않았을까요? 결국 로마인들이 만든 도로는 맥주 양조기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그 먼거리를 갈 때, 필요한게 뭐가 있을까요? 

바로, '휴게소'(tavern)!!! 그리고 여관(inn)!!!

Tavern은 '선술집'이죠. 이는 'Taverna'라는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이 타번은 로마인들의 목을 축여주거나 음식을 주는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머물 수 있는 여관(Inn)의 존재도 로마인들이 건설해놓은 도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죠.
초창기에는 타번이나 인의 구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후에 상업이 발달하면서 선술집(타번), 여관(인), 레스토랑으로 구분되기 시작했죠.





여담으로 과거 유럽에서는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보내는 건 큰 실례라고 했다네요. 우리도 그렇죠? 지나가던 손님이 찾아와 음식을 청하면 대접해주고, 맥주도 주고 하는게 당시 문화였답니다. 심지어는 걸인이 오더라도 그냥 쫓으면 안되고, 맥주 한잔이라도 줬다고 합니다. 물론 그 맥주는 가장 저급, 걸르고 거른 맥주였지만요. 

그만큼 맥주는 우리네 김치나 막걸리처럼 집에서 항상 담가놓는 음료였습니다. 선술집이나 여관, 게스트하우스 등이 바로 이런 풍습의 원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이래저래 좀 길어지네요~ ㅎㅎ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맥주 역사는 이후 이 수도원과 더불어 쓰릴 만점, 드라매틱, 흥분 킹왕짱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담 포스팅에는 뭐가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네요. 

P.S. 요즘 마트 가시면 Ale 이라는 맥주를 보실 수 있어요. 이는 Larger와 구분되는 맥주의 종류인데요. 18세기 Lager가 개발되기 전에 인류와 함께 했던 모든 맥주는 Ale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맥주는 모두 Ale 입니다. 다른 포스팅에서 같이 정리해보죠. 아마 저나 여러분들이 지금껏 마셔왔던 황금색 맥주는 모두 Lager라고 보시면 되요. ㅎㅎ

맥주의 역사 그리스 로마의 맥주 ( 출처 : tistory )

음...아...이 포스팅이 왠지...세계사 포스팅이 되어가는 듯. 하하...하하하.
빈둥

유럽의 와인벨트(Wine belt)라고 아시나요? 커피와 마찬가지로...(제가 커피도 많이 좋아하는데. ^^) 와인에 필요한 포도는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습니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강수량이 많지 않으며, 배수도 좋아야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안개도 있어야하구요.


SONY|NEX-5|Normal program|Pattern|1/125sec|F/11.0|0.00 EV|18.0mm|ISO-200|Flash did not fire, auto mode

SONY|NEX-5|Normal program|Pattern|1/320sec|F/7.1|0.00 EV|18.0mm|ISO-200|Flash did not fire, auto mode


Apple|iPhone 4S|Normal program|Pattern|1/642sec|F/2.4|4.3mm|ISO-64|Off Compulsory


사진에서 보시는 곳은 독일 라인강에 있는 뤼데스하임이란 곳에서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라인강은 '와인가도'로 유명한 곳이지요. 보시다시피 강을 끼고있고, 일조량이 좋은 비탈에 포도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독일 남서쪽, 프랑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죠. 맥주가 유명한 독일이지만 라인가우나 모젤 지역은 리슬링으로 만드는 세계최고의 포도주가 나온답니다. 그 유명한 TBA도 이곳에서 처음 만들어졌죠. 이에 대한 포스팅은 나중에 여행 포스팅에 올려드릴께요.

다시 돌아와서, 즉, 와인용 포도는 기후와 토양을 꽤 까다롭게 가리는 녀석들이죠. 와인산지가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미국의 서쪽지역, 호주, 뉴질랜드,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독일의 일부,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와인벨트 지도를 함 살펴볼까요?

The Grape Line (출처 : Tasting Beer, Rand Mosher)

위 그림의 검정색 라인이 와인벨트, 혹은 wine grape line 이라고 불리는 선입니다. 이 선의 남쪽은 와인이 생산되고, 또한 많이 소비되는 곳이지요. 북쪽은 와인대신, 바로 맥주가 생산되고 많이 소비되는 곳입니다. 한국의 비어헌터이신 이기중 선생님은 저 라인을 '비어벨트'라고도 하십니다~

그런데, 이 속에 맥주와 와인의 재미있고,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이 있는 거 아시나요? 

지구상 모든 생물은 지역 기후와 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 중 인간의 문화는 자연의 여건에 따라서 발전될 수 밖에 없죠. 이집트가 쇠퇴할 즈음, 지중해를 꽃피운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리스 문화입니다. 이집트 시절 마르고 닳도록 맥주 문화가 기록되어 있는 반면, 그리스에는 맥주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즉, 그리스 사람들은 맥주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의미겠죠?

대신 그리스는 와인에 대한 예찬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모습을 담은 그림

누가봐도 와인 잔이네요~ ㅎㅎ

기후적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더 용이했고, 온화한 자연과 문화는 자연스레 와인을 더 마시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이 당시에 아예 맥주가 없었는냐? 그건 아닙니다. Rand mosher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고대 소국가인 리디아와 프리지아의 맥주의 신인 Sabazius를 와인의 신인 Dionysus로 탈바꿈 시켰다고 했습니다. 즉, 당시 지역 소국가에서는 맥주가 전통적으로 애용되고 있었다는 것이겠죠.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보리로 만든 메트나 마시는 족속이라니..." 라고 했고, 호메로스는 그리스 사람들이 '폴토스'라는 이름의 보리죽을 만들어 먹더라는 언급을 했습니다. 여기서 폴토스는 맥주와 비슷한 음료였다고 합니다.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 야콥 블루메, 김희상 역)

메트는 꿀과 향료를 발효시킨 음료로 당시에는 맥주와 비슷하거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메트와 맥주의 관계는 다른 포스팅에서 간단하게 다뤄드릴께요. 맥주와 와인이 몇 천년간 살아남았다면, 메트는 그 사이에 껴서 사라져간 비운의 음료랄까..?

다시 돌아와서, 즉, 그들도 맥주를 마시긴 마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명의 찬란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그리스는 이것저것을 섞어 발효시킨 맥주보다 시큼달콤한 와인을 훨씬 선호했고, 어른과 아이 모두, 와인을 물처럼 마셨습니다. 



마시고 토하고...마시고 토하고...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은 와인을 매일 마셨지만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보통 물을 섞어서 마셨고, 취하고 비틀거리고.. 이런 것을 야만스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이런 그리스 로마 사람들이 술을 퍼먹고 취하는게 일상이었던 저~ 북쪽 게르만족들이나 취하는 것에 너그러웠던 이집트인들을 보고 얼마나 무시했겠어요. 

하하

후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사실 맥주를 발달시킨 원동력은 바로 로마인들에게서 나왔답니다. 맥주를 천시하고 비하하던 로마인들 덕에 맥주문화가 발달되었다니, 흥미롭지 않나요? ^^

암튼, 그리스 시대부터 맥주는 천한 것들이나 마시는, 야만족들이나 즐기는, 없는 것들이나 겨우 먹는 음료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20세기까지 이러한 문화는 서양문화에서, 특히 와인을 즐기는 나라에서 이어져왔죠. 

두둥~~~ 

드디어 인류문명에 큰 획을 긋는 로마제국으로 넘어옵니다. 최고의 문화를 꽃 피웠던 로마인들, 고대유럽 전역에 자신의 힘을  과시했던 로마인들은 맥주에 관대했을까요? 

당근...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콧대 높은 로마인들이 야만인들이나 처마시는 맥주를 좋게 여기지 않았겠지요. 추운 북쪽이 아닌 따뜻한 남쪽에서 언제나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있었기에, 맥주는 계속 천시 받았습니다. 그러나, 맥주를 마냥 천시한 것만은 아니에요. 맥주에는 와인에는 없는 갈증해소능력과 영향소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가난하거나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으로 맥주가 애용되기도 했답니다.



로마시대의 맥주는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나 마시던 술이었던 셈이지요. 


뭐라고, 와인을 마신다고?! 거 어디 출신이신가?
와인에 맹세코 나는 아직 너를 모르네.
와인은 신들이 즐기는 맛이라네.
그런데 자네에게서는 산양의 고약한 악취가 나는군.
포도를 구경할 수 없는 토이토니아의 인간들은
보리죽이나 마신다면서,
보리죽 따위가 그리도 좋더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음으로
괴로워하기 싫거든, 포도즙을 마시려무나,
와인처럼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게 또 있더냐.

-아포스타타, 율리안, "로마의 황제"-
(출처 :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 야콥 블루메, 김희상 역)


로마인에게 와인은 신과의 대화를 위한 음료였습니다. 매일 1리터 이상의 와인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처럼 그렇게 먹고도 취하지 않도록 했다네요. 그 이유는 바로 와인을 물에 섞어마셨기 때문이죠. 그 당시 와인은 알콜이 담긴 술이라기 보다는 일상 음료에 가까웠기 때문에 와인을 마시고 취하는 것에는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럴만도 한게, 일반 물을 마시는 것보다 와인에 물을 섞어마시는 게 당시로는 위생적으로 더 안전했기 때문이지요. 

맥주와 관련된 역사를 하나 더 살펴볼까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저술한 '게르마니아'에는 기원전 1세기에 게르만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실려있다고 합니다.

"음료중에 보리나 밀로 만든, 다소 포도주와 비슷하고 품위가 떨어지는 액체가 있다. 강기슭(라인 강과 도나우 강) 가까이에 사는 자들은 포도주까지 사마신다."

(출처 : 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까미 미스루 저, 이현정 옮김)

얼마나 맥주를 무시했는지, 아니 맥주라는 술이 당시 어떠한 위치에서 이용되었는지 알 수 있네요~ 

우리가 흔히 와인을 우아하다라고 표현하고 복잡한 시음법이나 아로마나 부케를 평가하는 습관. 그게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닙니다. 중세 시대 이전,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로마로 부터 이어진 끈이 있는게지요. 귀족과 왕이 애용한 와인과 서민의 술, 맥주. 

그렇다고 이 둘의 관계를 나누거나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지요. 
누군가 "야, 너는 와인 마시는구나. 나는 그냥 싼 맥주나 마셔야지." 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선입견이에요. 그건 술의 종류나 맛이 아니라, 포도가 잘 자라던 지역의 사람들이 권력을 가졌고, 그 세력들의 취향이 와인을 더 좋아했을 뿐이죠.
그리고 와인이 맥주보다 양조기간이나 한정된 지역으로 인해 가격이 비쌀 뿐이지, 가격이 싸다고 맥주가 저가의 술은 아니겠지요. 그냥 취향의 차이일뿐~ 

저는 와인, 막걸리, 사케, 맥주, 위스키, 꼬냑 다~~~ 좋아합니다. '소주'만 빼고...ㅋ

미안2


이 당시 맥주를 지금처럼 발효된 맥아에 홉을 넣은 (사실 홉 전에는 '구르트'를 넣었어요) 깔끔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당시 맥주에는 보리, 밀, 꿀, 크랜베리, 허브 등이 맥주에 사용되었다고 해요. 위에서 잠깐 이야기한 '메트' 또한 이와 비슷하구요. 와인이 포도에서 나왔다면 맥주는 보리나 밀, 혹은 귀리를 베이스로 여러 향료가 들어간 술이었습니다. 지금도 벨기에 맥주에는 코리안더나 귤껍질 같은 향료가 들어가지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요 맥주에도요.
Canon|Canon EOS 10D|Pattern|1/2sec|F/13.0|0.00 EV|105.0mm|ISO-400|Flash did not fire
뒷면을 보시면 여러다른 재료들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미국 IPA (나중에 뭔지 같이 공부해보아요)에도 종종 여러재료들이 들어가곤 하지요. '맥주 순수령'을 지키는 독일 맥주를 제외하구요. 이건 차차 알아가도록 하죠~

어쨌든, 저쨌든~~~~~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맥주는 찬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시대에 맥주가 찬밥이었다고, 북쪽에 있는 나라들은 맥주를 안마셨을까요? 그렇지 않죠. 영국, 독일 (그 당시 Bavarian) 등, 와인밸트 위쪽 지역, 포도 재배가 어렵고, 보리와 밀이 풍부했던 국가들은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로마제국의 영토가 얼마나 거대했냐면요.

로마제국의 영토

요래요래 했습니다. 고대영국인 브리트니아, 게르만까지 로마제국은 영토를 넓혀갔지요. 재미있는 건, 저 위에 있는 와인밸트 지도와 비교해보면 와인밸트와 로마제국의 북쪽 경계선이 거의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
로마는 이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엄청나고 거대한 도로를 건설했는데, 그 크기가 자그마치 현재 미국의 고속도로와 필적할만했다고 하네요. 

가장 전성기때는 페르시아부터 영국에까지 이르렀고, 총 8만km나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철도가 이용될 때까지 사용되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와 기술이네요. 로마부터 영국까지 단 13일 밖에 안걸렸답니다. (출처 : 퀸스향의 블로그)


로마의 도로 
(출처 : 퀸스향의 블로그, http://yj651215.blog.me/140044556926)




이런 도로를 통해 로마는 북유럽을 지배했고, 그 북쪽 경계선에서 맞딱드린 heavy drunker들...ㅋㅋㅋ 

로마인들이 가보니, 거기는 와인은 커녕, 포도도 구경하기 힘들었다는거 아닙니까. 마실 액체는 필요하고...술도 필요하고...주위에 둘러보니, 있는 건 맥주고...^^


Canon|EOS 20D|Pattern|1/50sec|F/3.5|15.0mm|ISO-400|Off Compulsory
폼페이에서 발견된 bar~

요건 폼페이에서 발견된 Tarvern~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로마인들은 어떻게 맥주문화가 꽃 피우는데 큰 역할을 했을까요? 위 그림에 약간의 힌트가 있긴 합니다만. ^^